2024년 12월 2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하나님 나라는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립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은 마귀의 노예되었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더 이상 마귀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처럼 산다는 것은 자기 욕심만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여 갈등, 분쟁, 파괴가 나타나는 지금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하나님 나라와 마귀와의 대적과 분열이 끊임없기 마련이며 이것을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성도 개개인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영적 전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무너뜨리고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싸워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며 우리의 삶에서 예수를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도 본문 12장에 마귀의 강력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성경에는 헤롯이 5명 나오는데 본문의 헤롯은 아그리파 1세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에서 살다가 주후 약 39년에 유대의 왕이 되어 새로 부임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유대인들을 기쁘게 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야고보를 죽인 것입니다. 3절 상반절입니다.
[3a]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유대인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며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기뻐한 것입니다. 왕이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연한 기회로 왕이 되어 유대에 왔지만 지지 기반이 없던 헤롯은 사람들의 환호에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인정을 얻고자 야고보를 죽인 일이 유대인들의 인정을 받자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기로 합니다. 3절 하반절과 4절입니다.
[3b] …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
무교절과 유월절은 유대인에게 가장 큰 축제일이기에 축제가 끝날 때까지 처형을 잠시 미룬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의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위험에 처한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기였습니다. 그때 교회가 무슨 일을 했나요? 5절입니다.
[5] …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기도는 교회가 해야 될 제일 중요하고 강력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도 힘을 키워 권력자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영적입니다. 황제가 죽이려고 하지만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기도가 마치 영적 에너지를 쌓는 것이며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 더 신령하고 능력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기도는 정반대입니다. 기도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만 의존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진짜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기도를 많이 하니까 능력이 많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기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자다’라고 인정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직접 왕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맡겨드리는 믿음과 기도로 싸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성도들은 기도하면서도 믿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일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어떤 결과를 얻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적한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1.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으로 무력화됩니다. vv.6-19
하나님 나라를 대적한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으로 무력화됩니다. 6절 말씀입니다.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어 네 명씩 네 그룹으로 지키고 또 쇠사슬로 매어 군병 사이에 두었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기독교에 중요한 인물이며, 베드로를 죽여야 기독교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것을 헤롯이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런 수비를 뚫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런데 7절에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인간의 쇠사슬로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보지 못할 뿐이지 천사들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악으로 치달아 마귀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영적 세계에 개입하고 계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개입하시는 것처럼 알려주어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신비한 개입으로 천사를 만나고 구원 받습니다. 우리도 모두 이런 천사를 만나야 하나요? 아닙니다. 1절에 야고보는 바로 죽임 당했습니다. 베드로가 야고보보다 착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야고보가 죽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베드로가 풀려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특별하게 개입하시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반대로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풀려났으니 훨씬 더 행복할까요? 저라면 야고보의 인생을 택할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죽어서 바로 하나님 나라에 갔지만 베드로는 이십년 넘게 박해와 고난을 피해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임을 당합니다.
즉 베드로는 사명이 있어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구원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8절부터 10절까지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를 받으면서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자 꿈을 꾸고 있나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자기 틀이 너무 강해서 현실에서 자기 마음을 잘 바꾸지 못해서 그런지 하나님은 고넬료 사건 때도 환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다음날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때까지 깊이 잠든 것을 보면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자신을 살리셨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은 감옥에 갇히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신다는 교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뜻을 이루고자 개입하시면 아무리 강력한 세상과 권세도 소용없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적을 염원합니다. 감옥에서 풀려나려면 감옥에 갇혀야 되니까 그런 기적은 기대하지 않지만 병이 낫거나 돈을 벌거나 문제가 해결되기를 늘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경험하게 하실 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극심한 핍박이나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고통을 뛰어넘게 하실 목적으로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삶에서 기적을 많이 경험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의 선봉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기도하시나요? 그러면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베드로처럼, 매 맞고 파선되고 쫓기다 목이 잘려 죽는 바울처럼 복음이 선봉에 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 인생을 바치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외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맨발의 성자로 알려진 썬다 싱은 1893년에 시크 교도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온화했던 성격이 14살 때 형과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폭력적으로 변해서, 다니던 장로교 학교에서 성경책을 불태우고 예수를 욕하며 기독교를 박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시크교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자 내면의 공허감 때문에 자살을 계획합니다.
오늘 밤까지 신이 답을 주지 않으면 기찻길에 목을 올려놓고 죽겠다며 마지막 기도를 하는데 그 밤에 빛이 그의 방에 찾아 왔다고 합니다.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내가 바로 네가 찾는 길이다. 나는 너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린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음성을 듣고 그는 15살의 나이에 회심을 했습니다.
시크교도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돌돌 말아 터번을 두르는데 썬다 싱이 머리카락도 자르고 예수를 따르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돌아오면 전 재산을 준다는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자 아버지가 내쫓으며 주먹밥을 싸주었는데 그 안에 독이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집니다. 겨우 선교사 집 앞에 갔을 때에는 이미 독이 온 몸에 퍼졌고 급히 의사를 불렀지만 가망이 없다고 가버렸는데 썬다 싱이 살아났습니다. 다음 날 시신을 화장을 하러 온 의사는 그가 살아난 것을 보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당시 북인도에는 시크교가 워낙 강해서 기독교가 전혀 전파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16세의 썬다 싱은 그 때부터 성경책과 담요 하나를 들고 북인도와 북인도 위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 티벳까지 맨발로 전도를 다녔습니다. 40세가 될 때까지 티벳으로 전도하러 가기 위해 히말라야를 열 번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티벳의 라마교 승려들이 썬다 싱을 묶은 뒤 구덩이에 던졌는데 그 곳은 시체가 사람 머리까지 쌓여 있어서 3일 밤을 자지 못 하고 시체와 같이 썩어갈 뻔 했는데 갑자기 줄이 내려오며 ‘이 줄을 잡으라’는 소리를 듣고 올라와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네팔에서 끌려가 매를 맞고 발가벗겨져 수감되었는데 간수들이 똥오줌을 뿌린 뒤 손바닥만 한 거머리 수백 마리를 붙인 것입니다. 거머리들이 피를 빨아먹으면 하루 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썬다 싱이 정신이 희미해지자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다음 날 간수들이 시체를 확인하러 올 때까지 찬양을 부르고 있자 간수들이 놀라서 문을 열고 내보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살아나 40살까지 인도 북부, 티벳, 네팔을 돌며 전도하여 1900년대 초에 인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도 복음을 듣고 구원 받으셨다고 합니다.
왜 썬다 싱은 이런 기적들을 경험했을까요? 아무도 예수님을 모르던 황무지 같은 인도 북부에 복음을 전하시고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이런 정도의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요? 바로 12절 말씀입니다.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우리가 직접 베드로나 썬다 싱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목사인 저도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잠깐씩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들의 경험에는 비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시나요? 우리는 할 수 없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 뒤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어떤 일이 일어나면 결국 그 영광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은 기도하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나요? 13절부터 15절을 보시면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성도들이 모여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베드로를 풀어달라고 기도하던 사람들이 베드로가 풀려난 것을 믿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만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태에 따라 조건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를 기도에 동참시키시나요? 그것으로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베드로를 보고 16절에서 어떻게 반응하나요?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질 때 믿음이 있다면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불안하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온전한 믿음이 없음에도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일을 행해 나가시는 것을 보는 경험이 반복되어 쌓이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죽임으로 기독교의 싹을 잘라버리면 유대인들이 자기 편이 되어 권좌가 견고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허무하게 끝나자 분풀이를 합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박해하고 대적하지만 성경은 영적 결말을 말해줍니다. 2천 년 뒤의 먼 곳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나요? 세상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에도 국가적, 개인적으로 많은 박해와 거부가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뜻에 따라 확장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정에서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에게는 위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 가정의 어느 자매는 길을 가다 십자가를 보고 혼자 교회를 갔는데 그 때부터 집에 교통사고 등 우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집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자 교회를 못 가게 막다가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밀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교회를 계속 나오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저를 저희 집에 선교사로 보내셨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를 전하다 핍박받고 죽임도 당하는데 저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선봉에 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적 유익을 위해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적보다 놀라운 것은 복음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 인생이 사용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경험하게 하셔서 그 은혜와 영광,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적한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2. 인간의 교만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vv.20-24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한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인간의 교만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20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20a]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
시돈과 두로는 유대에서 북쪽 해변가에 있는 도시 국가로 구약 시대부터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들은 해양 무역으로 돈이 많고 비싼 값에 중개 무역을 하다 보니까 헤롯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농사를 짓지 않아서 유대로부터 양식을 공급받고자 20절 헤롯과 화해하고자 합니다.
[20b]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무역의 이익만 얻고자 대적하는 동안 곡식을 공급받지 못해서 불편해지자, 잘 지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여 중간에 사람을 통해 헤롯에게 화해를 청하며 사신들을 데리고 선물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북쪽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두로와 시돈이 사신과 공물을 가지고 오니까 헤롯으로서는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뽐낼 좋은 기회였습니다.
금과 은색의 휘황찬란한 왕복을 입고 백성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데 마침 태양빛이 저녁 노을이 비치면서 금과 은의 왕복이 번쩍번쩍 빛났습니다. 21절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효유는 연설했다는 뜻입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공물을 가져왔고 많은 백성이 둘러섰고 노을에 반사되어 금과 은이 빛나자 백성들이 ‘멋있다, 신 같다’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왕의 기분이 좋아야 자기들한테 선물을 나눠주고 후하게 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3절에 헤롯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래, 내가 신이지, 내가 이렇게 영광스럽지’ 하며 일개 인간이 하나님 행세를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행위입니다. 헤롯은 거기에다 마귀의 도구가 되어 야고보를 죽이고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벌레를 보내십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헤롯이 연설 후 갑자기 배가 아파서 쓰러졌고 며칠 앓다 죽었는데 아마도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주후 39년에 왕이 되어 41년 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로마에서 수십 년간 망명자로 살다가 겨우 왕권을 얻어서 이제 왕이라고 어깨를 폈는데 3년 만에 허무하게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2장에 제일 중요한 구절이 24절입니다.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세상의 역사 기록만 보면 베드로가 어떻게 풀려났는지 헤롯이 갑자기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추측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귀적 영향력은 강력하지만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찍 죽을 수도 늦게 죽을 수도 있지만 관계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초월적 능력으로 일하시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마귀 세력에 대한 결론이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결론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일을 행하실 것이고,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하나님이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영광스러운 일에 사용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흔들리게 됩니다. 마치 일제 시대 때 해방을 믿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변절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암송했던 시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시작되던 [국화 옆에서]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지은 서정주 시인이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습니다. 반면 서정주 시인이 아끼고 주례까지 선 제자인 조정래 시인은 반일파였는데 해방 후 스승에게 공개적으로 친일을 사과하라고 설득했는데 그때 서정주가 했던 말이 ‘나도 일본이 망할 줄 몰랐어’였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믿지 못하면 우리는 마치 일제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편하게 살 길을 모색하는 자들처럼 왜곡되고 이기적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속이고 있는 거짓된 세상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곧 임할 때, 우리는 해방의 기쁨에 동참했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 예수의 오심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